학회동향
色을 쓰다
by rinkey | Date 2016-12-24 15:21:18 hit 279



디자이너- 色을 쓰다.

 

                                                                                                 차 윤 석

 

                                                                                                          

부산대학교 도시공학과 졸                                                                                   

베를린공과대학 건축과 졸                                                                                                    

독일건축사


 

 

 오해가 많은 제목임은 필자도 인정하는 바이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본의 아니게 性的 뉘앙스를 띄는 말이 한두개랴 만은 이 말처럼 비속어의 느낌이 강한 말도 없을것 같다. 물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가 없으리라 굳게 믿으면서 시작한다. 제목에서 밝힌바와 같이 이 글은 디자이너의 色의 활용에 관한 글이며, 우선 色에 대한 필자의 斷想들을 정리한 후, 그 활용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가능하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특정사례가 아닌 일반론으로 논의를 국한시키고자 한다.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됨은 잘 알고 있으나, 단지 몇가지의 사례로 논의를 국한시키거나 선입견을 유발시키고 싶지 않으며, 특정사례로 인해 논의가 왜곡됨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임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디자이너에게 色은 사용하기에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이고 강력한 도구이다. 이 전제는 디자이너든 아니든 보편적으로 옳다고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으리라 믿는다.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이란 말은 요즘말로 "가성비가 좋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성비는 어디서 오는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이 있다. 단순히 가성비만으로 色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다 표현할수 있을까 하는것이다. 단순히 싸고 좋기 때문에 많이 쓴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이다. 경제학적 합리성도 물론 하나의 이유가 되나, 이것만으로 왜 色이 우리 일상에서 넘쳐날 정도로 많이 사용되며, 심지어 이것을 연구하는 학문, 전문직이 생겨난 배경을 설명해 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다시 질문을 해보자. 왜 우리는 色을 많이 쓰이는 걸까? 色의 어떤 속성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많이 사용하게 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色이 가진 "단순함에서 오는 다양성"이다. 문장이 다소 모순되는것처럼 들리지만, 그 이유는 앞으로 전개될 논의에서 충분이 설명될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가 가진 색채학에 관한 짧은 지식으로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인문학적 상식선에서 글을 쓸수 밖에 없음에 대해서 우선 양해를 바라며 논의를 시작한다. 단순함에서 오는 다양성이란 말은 크게 두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단순함에서 오는 다양성"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단순한 몇가지의 기본색으로 명도나 채도를 조정하고 그것들을 조색하여 수없이 많은 색들을 만들어 낼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첫번째 해석이다. 아마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며, 다분히 양적인 의미가 강한 해석이다.

 

 두번째 해석에 있어서는 단순함과 다양성을 분리,통합해서 순차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우선 여기서는 "단순함"이라는 개념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다른 외부요인들을 배제한 단순함, 그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 글에서 단순하다것은 "인식가능에 있어서의 편리성"을 의미한다.1)色의 속성상 시각적으로 지각될 수 밖에 없으며, 시각은 우리가 일상에서 정보를 습득할때, 다른 감각기관들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고 많이 받아 들일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百聞이 不如一見이란 속담처럼 일상에서 여타 감각기관에 비해 시각의 중요성은 잘 알려진 바이다. 또한 동서양을 아울러 우리속담과 외국속담이 그대로 번역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지만 많은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표현을 자국 속담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각이 정보습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방증해 주는것이라 하겠다. 감각기관을 통한 정보습득과 인식은 필연적으로 주관적, 객관적 왜곡을 동반하게 되나, 단일 감각만을 놓고 비교해 보았을때 시각적 정보습득이 다른 감각기관의 정보습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곡의 위험성이 적은것도 사실이다. 물론 정보를 습득하는 사람이 특정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떤 감각기관을 통해서 정보를 받아들이든 왜곡은 발생할 것이다. 허나 이는 일반적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 무언가가 상대적으로 왜곡의 위험성이 적으면서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 앞서 말한 "인식가능에 있어서의 편리성"의 의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 인식가능성은 - 비교되는 인식의 대상들이 같은 범주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 특정 대상이 그 외의 다른것에 대해 가지는 강렬한 대비에서 기인된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인식이 무엇인가하는 철학적 논의는 아껴두도록 하자. 인식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이미 수천년전부터 존재해왔고,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문제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논의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문제로 인해 논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특정대상이 인식이 될 수 있는 과정중 하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기본조건으로 그 대상을 포함한 최소 두개이상의 대상이 존재하며, 다음으로 이들의 차이점이 파악, 비교되고, 이 비교를 통해  단일대상이 상대적으로 정의가 될 수 있다.2)예를 들면 하늘이 하늘로서 인식될 수 있는 조건은 하늘외의 다른 개체들이 - 땅이라든지 바다 등- 존재를 해야하며, 이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하늘은 땅이 아니며, 또한 바다가 아니라는 사실이 보편타당한 인식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짐으로서 하늘은 하늘로 정의가 될 수 있는것이다. 쉽게 말해 하늘은 땅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기 때문에 하늘이 될 수 있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물론 혹자는 만약에 차이에 의해 어떤 대상이 정의되고 인식이 되어야 한다면, 비교대상과의 차이는 밝힐 수 있으나, 특정대상이 반드시 특정명칭을 가져야할 근거로는 부족하며, 이는 정체성의 부재로 이어진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늘이 땅이 아니고 바다도 아니라는 사실은 하늘이 반드시 하늘로 명명되어야 할 근거가 될 수 없음은 필자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이 글에서 인식에 관한 철학적 논의나 필자의 의견을 일일이 다 피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차후에 이를 논의할 기회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족이 길어졌지만, 무엇을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해 졌다고 본다. 이는 色이라는 단일범주와 이에 속하는 대상들이 다른 범주와 그에 속하는 대상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色이라는 단일범주에 속하는 대상들끼리의 비교에 의한 대비효과도 발생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이후에 나올 다양성에서 설명될 것이다. 우선 여기서는 色이 다른 범주의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명확한 대비는 직관의 기본조건이다. 여기서 대비란 서로 다른 범주들 - 예를 들면, 색과 형태 - 간에 발생하는 대비를 의미하며, 그것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 설때, 인식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빠르고 쉽게 유발될 수 있다. 色이라는 범주가 다른 범주에 대해 가진 명확한 대비는 그 범주를 다른것들로부터 분리하여 범주의 독립성을 부여하며, 이는 마치 우리가 그것을 쉽게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3)`

 

 다양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개념들 - 단순함과 다양성 - 을 하나의 범주로 묶되, 단순함과 다양성간에 헤게모니를 설정해야 한다.4) 여기서 다양성이란 하나의 독립된 개념이 아닌 위에서 설명한 "단순함을 통해 이해된 色"이라는 개념내에서 발생하는 다양성을 의미한다. 위에서 특정범주의 다른 범주에 대한 대비를 통한 그 범주의 독립성에 대해 논의한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 대상들이 그 범주내에서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다른 범주에 속한 대상들도 얼마든지 변화를 통해 다양성을 부여할 수 있지도 않는냐고 반문이 가능하다. 기하학적 도형들도 얼마든지 면의 수를 늘이거나 모양을 바꾸거나, 부정형을 통해 수없이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것이 형태라는 범주의 다양성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도 계실것이다. 기본색을 조색해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나, 형태를 바꾸어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도형의 다양성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는 질문도 충분히 가능하다. 디자인을 함에 있어 형태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그자체만으로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그렇게 많지 않으나, 色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다시 말해 色의 변화는 내재된 속성의 변화이고 기하학적 변화는 형태적 변화를 통한 새로운 속성의 부여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色의 발현은 필연적으로 시각적 현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현상이란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진 표현이 아닌, 문자 그대로 하나의 현상 혹은 행위 - 일상의 예로 페인트를 칠하거나, 아이들이 물감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 - 등으로 가볍게 이해하자. 똑같은 크기를 가진 정사각형의 종이 위에 서로 다른 열가지 色을 칠한다고 하자. 여기서 우리는 칠해진 열가지의 그무언가를 色이라는 범주로 인식,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칠해진 色의 갯수가 열가지라는 사실, 이 열가지의 色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도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기하학적 변화 또한 시각적 현상을 전제한다. 하지만 같은 넓이를 가졌다 하더라도 삼각형과 사각형은 분명히 다르게 인식될수 밖에 없다. 이들 또한 기하학적 도형이라는 범주로 이해될 수 있으나, 변의 갯수가 달라짐으로서만이 삼각형은 삼각형으로 사각형은 사각형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의미다. 변의 길이를 조절하여 서로 다른 열가지의 삼각형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하는 것도 분명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 필연적으로 넓이의 변화를 동반하게 되며, 이는 앞서 언급한 色이 인식되는 방법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내재된 속성의 변화로 기인된 다양성은 통제가능한 다양성이다. 일견 모순되게 들리지만, 내재된 속성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의 성질이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는 말이며, 정의될 수 없기 때문에 사용자의 주관적 개입이 가능해진다.5)주관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말은 사용자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해준다. 따라서 통제가능한 다양성은 그 사용에 있어 특정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그 원칙은 色을 사용하는 주체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주체라함은 사용목적을 수립하고 그 목적을 달성할 의지를 가진 주체, 협의로는 디자이너, 광의로는 인간을 의미한다면 쉽게 이해가 될것이다. 혹자는 기하학적 변화도 사용주체가 특정목적을 수립하고, 그 목적달성을 위해 변화를 의도한다면 그것도 통제가능한 다양성이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기하학적 변화는 기본적으로 유클리드의 원론에 따른 정의와 公理에 기반을 둔다.6) 기본적인 요소들이 - , , , , 도형 등 - 정해진 원칙에 따라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이미 만들어진 체계이며, 이 체계는 이미 어느정도 보편타당하다고 인정되고 있다. 누군가가 이 원칙들을 변화, 혹은 재정리 한다고 해도 과연 그 원칙들이 원론과 같은 보편타당성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을것이며,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체계가 있다는 것은 사용자에게 한편으로는 편의성을 보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속이 될 수도 있으며, 엄밀한 의미에서 과연 사용자가 주체가 될 수 있을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이에 반해 통제가능한 다양성은 사용자로 하여금 다양한 주관적 해석과 일반적인 원칙에 구애받지 않는 사용자의 독자적인 원칙수립을 가능케 해준다. 물론 色의 발현은 어떤식으로든지 형태를 가진 외부대상을 통해야 표상 가능하고, 그렇다면 그 자체의 속성변화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반론도 가능하나, 이것은 다음에 나올 色의 사용과 관련된 문제로 이후에 논의하기로 한다. 다른 외부효과를 배제하고도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것은 色이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도 강력한 속성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어떤 개념이 그 자체내에서 순수한 의미의 단순함과 다양성을 가진 예는 굉장히 드물며, 이는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하고 이해하는것을 가능케 함에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속성은 왜 色이 왜 매력적인지를 설명해주며, 이는 일상에서 활용도가 높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色을 사용해야 하는것일까"란 질문을 하는것이 논리적 전개일 것이다. 여러분야가 있겠지만 모든 분야를 다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고, 제목에서 밝힌바와 같이 디자인에 국한을 한다고 하여도 디자인의 수많은 분야를 다 다룬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여기서는 디자인 전반에 통용될 수 있는 일반론으로 그 범위를 압축하고자 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나오게 된다. 과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연필에서 시작하여 자동차, , 더 나아가 도시디자인까지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일반론이 존재할 수 있을까가 그것이다. 디자인에 있어 色의 활용에 대한 일종의 메타이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일반론이 존재하는가? 필자의 개인적 생각에 따르면 그것은 분명히 존재를 하고 존재해야만 한다.7) 앞서 色의 속성중 다양성을 설명함에 있어 사용주체의 주관적 해석과 원칙수립이 가능하다고 했다. 혹자는 여기서 일반론을 논하는 것이 주관적 해석, 원칙수립과 상충하지 않는냐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논리전개에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고 넘어가도록 한다. 다양성을 설명하기 앞서 필자는 "단순함으로 이해된 色"을 전제했고, 이에 기반을 둔 "다양성"을 도출하였다. 이 과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다양성이란 개념은 단순함이란 상위개념이 없이는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따라서 하나의 특정개념이 설명되기 위한 조건으로서 상위개념이 전제가 되어야 하며 이들간에는 위계가 성립하게 된다. 같은 이유로 "色의 활용"에 대한 논의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밟아서 한다면 논리전개나 이해에 있어 큰 무리가 없을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앞서 언급했듯이 色은 자체의 속성변화로 인한 다양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이는 외부대상을 통해 표상이 되고, 또 통제가능하다고 했다. 다양성과 통제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여기서는 외부대상을 통한 표상과 그 활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외부대상은 필연적으로 특정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 형태는 디자인을 전제로 한다. 작은 오브제에서 집, 도시에 이르기까지 물리적 디자인은 계획과정에서부터 최종결과물을 아우르는 필수요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여기서 色의 활용은 디자인 과정에 수반되는 하나의 필수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말해 디자인에 있어 일반론이 필요하다는 점이 밝혀진다면, 色의 활용에 대한 일반론은 굳이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본다. 이론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거창한것 같으니 다른말로 원칙정도로 이해하도록 하자.

 

 앞서 필자는 왜 우리가 色을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에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답을 도출하였다. 마찬가지로 여기선 디자인을 살펴보는데 있어 유사한 과정을 적용시킬 수 있다. 그 시작은 "왜 우리는 디자인하는가"하는 질문일것이다. 혹자는 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고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애둘러 질문을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런 형식의 질문은 주관적으로 이해 혹은 오해될 소지가 많으며, 그에 따른 답변도 천차만별이 될 수가 있다. 또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형식논리는 필연적으로 답변의 가능성을 제한시킨다. 그렇다고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 혹은 반대로 네 말도 틀리고 네 말도 틀리다 - 라는 황희 정승式의 대답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앞서 色의 속성을 설명할때 필자가 직접적으로 定義를 내리지 않은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라고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왜 우리는 디자인을 하는가? 맥이 빠질수도 있지만, "필요하니까 한다"가 필자의 대답이다. 여기서 필요는 욕구(desires)가 아닌 요구(claims)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어떤 물리적 대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 그것이 작은 성냥이든, 100층짜리 빌딩이든 관계없이 - 디자인을 전제로 한다. 계획과정에서 최종결과물까지 - 계획과정에서는 목적을 달성하고 평가하기 위한 추상적 대안으로, 달성된 목적을 평가하기 위한 구체적 결과물을 가능케 하는 도구로서도 - 디자인은 필수적이다. 특히 물리적 결과물을 전제로한 계획에 있어 아직 달성되지 않은 목적을 평가하기 위한 도구로서 디자인은 유용하고도 필수적인 과정이다. 디자인의 스케일에 따라 과정이나 방법론의 차이는 있으나, 그 필요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필요성을 전제로 한다면, 디자인은 이미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확보한것이고, 정당성은 특정 원칙을 필요로 한다. 필자의 의견이지만 이 원칙은 의외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간단하다는 표현이 오해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굳이 사족을 달자면, 원칙이 간단하다는 것이지, 실제 활용과 결과가 간단하다는 말은 아님을 밝혀둔다. 단순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절차가 상상이상으로 복잡할 때도 있고, 결과가 원칙처럼 단순하지 않은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디자인의 목적을 결정한다.

둘째, 디자인의 규모를 결정한다.

셋째, 앞서 결정된 규모에 따라 개별 디자인 원리를 수립한다.

넷째, 수립된 개별원리의 활용은 일관적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결과물들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원칙들은 간단하며 일반적으로 이해하기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개별 원칙들에 대한 부연설명은 아끼도록 하겠다. 디자인 과정이 위의 원칙에 따라 진행이 되어야 한다며, 그 필수과정 중 하나인 "色의 활용"도 같은 원칙을 따라야 함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위의 원칙에 따른 "色의 활용"에 관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하고자 한다.

 

 

       21ddf0c84a48d4d7c7a85d092e0dbba7_1482825                  21ddf0c84a48d4d7c7a85d092e0dbba7_1482825

 
                        

   < 그림 1 > 출처 : www.melissaanddoug.com               < 그림 2 > 출처 : www.yamaha.com

 

 

 < 그림 1 > < 그림 2>의 객체들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피아노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첫번째 그림은 유아용 장난감 피아노이고 두번째는 연주용 피아노이다. 첫번째 원칙과 관련하여 디자이너는 무엇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위 그림처럼 둘다 피아노로 명명할 수 있으나, 유아용 장난감 피아노의 목적과 연주용 피아노의 목적이 분명히 다름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첫번째 원칙으로 디자인의 목적을 언급한 이유는, 그 이후에 나오는 원칙들의 기본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첫번째 원칙이 정해졌으면, 다음으로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과연 개별 디자인들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져야 하는가? 장난감 피아노와 연주용 피아노의 크기가 과연 같아야 하는가, 달라야 하는가? 같아야 한다면 왜? 달라야 한다면 왜 달라야 하는가? 이것이 결정되면, 각각에 맞는 디자인 원리를 정해야하며, 디테일한 색채계획은 이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첫번째, 두번째 단계에서 "色의 활용"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앞의 두단계들은 어느 정도의 지침을 주는 정도에서 고려되어야지, 디테일까지는 계획될 필요는 없다. 개별 디자인 원리에는 앞서 두가지 원칙들 - 목적과 규모 - 과 형태와 색채 디테일, 디자인을 현실화하기 위한 기술적 부분들까지 고려되어야 한다. 장난감 피아노와 연주용 피아노는 각각의 목적이 분명히 다르며, 크기도 다르다. 따라서 이 둘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달라야 하며, 형태와 색채 디테일은 다르게 계획이 되어야 한다. 물론 연주용 피아노를 장난감 피아노 크기로 축소제작할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목적이나 규모, 개별 디자인 원리를 고려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하는 질문은 꼭 던져봐야 한다. 넷째로 위에서 계획된 원칙들의 활용은 일관적이어야 한다. 연주용 피아노의 디자인과 제작원칙을 굳이 장난감 피아노의 디자인과 제작원칙에 반영할 필요는 없으며, 반대로 장난감 피아노의 디자인과 제작원칙을 연주용 피아노에 적용시켜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이 원칙들을 따라 실행될 디자인들은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왜 장난감 피아노가 놓일 아이들 놀이방과 실제 연주가 이루어질 연주홀의 형태, 규모, 색채가 달라야 하는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본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왜 위의 피아노라고 명명된 두 객체가 다른 형태와 색채를 가져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설득력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필자 나름 - 같은 혹은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분명히 있을것이라 본다 - 의 원칙임은 분명하나